시카고 첫 흑인 판사 이름 딴 빅텐 풋볼구장

'인종 정의' 시위 영향… 아이오와대학 최종 결정

1958년 쿡카운티 판사 재직 당시 대학 풋볼팀 동료들과 함께한 듀크 슬레이터 [AP=연합뉴스]
1921년 대학 재학 시절 모습. [AP=연합뉴스]
중서부 명문 '빅텐'(Big 10) 리그에 속한 아이오와대학이 100년 전 풋볼 대표팀에서 활약한 첫 흑인 선수의 이름을 교내 풋볼구장에 붙이기로 했다.

아이오와대학은 교내 '키닉 스타디움'(Kinnick Stadium) 풋볼구장을 '듀크 슬레이터 필드'(Duke Slater Field)로 명명하고 28일 이사회 최종 승인을 받았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듀크 슬레이터(1898~1966)는 미국 풋볼계에서 선구자적 입지를 갖고 있다.

일리노이주 노멀에서 태어난 슬레이터는 아이오와주 클린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이오와대학에 진학, 1918년부터 1921년까지 풋볼 대표팀에서 활약했다.

아이오와대학의 첫 흑인 대표 선수였던 그는 1921년 대학풋볼 시즌을 7전 전승으로 이끌고 빅텐 챔피언십을 거머쥐게 했으며 전미 아마추어 올스타 팀(All-America)에도 선발됐다.

이어 1922년 미국 프로풋볼(NFL) 사상 최초의 흑인 라인맨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밀워키 배저스에 입단, 10년간 일리노이주 록아일랜드 인디펜던츠(1922~1926)•시카고 카디널스(1926~1931) 등에서 뛰었다.

그 와중에 학업을 병행, 1928년 로스쿨을 졸업한 슬레이터는 시카고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 1948년 시카고가 속한 광역자치구 쿡 카운티 판사로 선출됐다.

시카고 선타임스는 슬레이터가 시카고 지역 최초의 흑인 판사 중 1명이라고 전했다.

1951년 '대학풋볼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그는 67세이던 1966년 위암으로 사망했다. 1963년부터 여러차례 '프로풋볼 명예의 전당' 입성 후보 물망에 올랐던 그는 다음달 마침내 헌정식의 주인공이 된다.

아이오와대학 측이 교내 스태디엄에 슬레이터의 이름을 붙여 기리고자 하는 시도는 1970년대에 처음 시작됐다.

윌라드 보이드(94) 전 총장은 풋볼 스태디엄에 1969년 하이즈먼 트로피(대학 풋볼 최우수 선수상)를 수상한 나일 키닉(1918~1943•제2차 세계대전 참전 훈련 중 사망)과 슬레이터의 이름을 함께 붙여 키닉-슬레이터 스태디엄으로 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러나 일부 팬들의 반발을 샀고 이사회도 공동 명의에 반대하면서 무산됐다. 결국 대학 측은 스태디엄에 키닉의 이름을 붙이고 슬레이터의 이름은 기숙사에 붙이기로 결정했다.

2019년에는 키닉 스태디엄 앞에 슬레이터와 1921년 팀을 기념하기 위한 청동 조각상이 설치됐다.

그러나 지난해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계기로 대학 캠퍼스를 비롯한 미국 전역에서 '인종 정의' 요구 시위가 크게 일면서 아이오와대학 풋볼 스타디움에 슬레이터의 이름을 붙여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제기됐다.

개명 지지자들은 "아이오와의 가장 위대한 흑인 운동선수 중 한 명인 슬레이터가 50년 전 명칭 결정 과정에서 무시됐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작년 시위 과정에서 아이오와대학 풋볼팀에 소속됐던 일부 흑인 선수들은 "팀 내에서 인종적으로 무감각(racial insensitivity)한 상황을 겪었다"는 주장을 펴 커크 페렌츠(65) 감독이 공식 사과하고 국가 연주 중에 무릎을 꿇을 수 있도록 하는 등 규정을 변경했다.

일부 전 선수들은 코치 2명을 상대로 인종차별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시카고=연합뉴스 김 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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