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언의 시시각각] 88%의 정치공학

88대 12로 편 가른 재난지원금
중간층 없는 2층 피라미드 구성
합리적 중도층이 설 곳 없게 해



지난 24일 국회에서 5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이 표결에 붙여졌다. 국민의힘의 협조로 재석 237인 중 찬성 208인으로 통과됐다. [국회 공동취재단]





두 종류의 국민이 생겼다. 재난지원금을 받는 88%와 받지 못하는 12%, 두 부류다. 정부는 앞쪽을 ‘하위 88%’라고 부른다. 차별 감수성이 뛰어난 정부인데도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은 12%를 향해 “상대적으로 좀 더 여유가 있는 분들”이라고 말했다. 가진 자산은 없고 연봉 5000만원 받는 1인 가구원은 12%에 들고, 부모가 사준 아파트나 오피스텔에서 살면서 부모가 주는 용돈 받아 쓰며 5급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1인 가구원은 88%에 속한다.

12% 가운데는 아무리 생각해도 ‘여유가 있는 분들’이라는 표현에 동의할 수 없거나, 동의하더라도 자신을 포함한 가족들이 25만원씩의 배급에서 제외되는 게 못마땅한 시민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세금 낸 게 누군데”라는 말이 곳곳에서 들린다. 88% 중에도 받는 건 좋은데 기분은 찜찜한 사람이 있다. 같은 가구원을 가진 사람들과 비교할 때 자신의 소득 수준이 상위 20%에 들지 못한다는 공인 인증을 받은 셈이다(소득 기준으론 80% 대 20%인데 이러저러한 이유로 20% 중 8%가 ‘구제’됐다).

자신이 대략 20% 안쪽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사람은 현실 자각의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 가장이라면 집에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20% 바깥에 있다고 짐작했던 사람도 마음이 불편할 수 있다. 시험 성적이 나쁠 것을 예상했어도 막상 성적표를 받을 때의 심정은 또 다르지 않은가.

사회의 계층을 묘사하는 도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다이아몬드 꼴이고, 다른 하나는 피라미드 형태다. 여기에서 약간 변형된 종 모양이나 모래시계 꼴도 있지만, 기본은 위의 둘이다. 학교에서 다이아몬드가 바람직한 형태라고 가르친다. 중류층(중간층, 중산층이라고도 한다)이 많고 상류층과 하류층이 적은 모델이다. 피라미드 모양은 사회의 불평등을 상징한다. 꼭대기에 소수가 있고, 바닥에 대다수가 깔린다.

2017년에 한국 통계청이 발표한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소득 기준으로는 14.7%가 하위층, 65.7%가 중산층, 19.6%가 상위층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분류 방법에 따른 구분인데, 다이아몬드형에 가깝다. 그런데 같은 조사에서 ‘인식’ 기준(조사 대상자의 주관적 평가)으론 44.6%가 하위층, 53%가 중산층, 2.4%가 상위층이다. 5각형 형태다. 지난해 조선일보 의뢰로 전문기관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체감 중산층’이 48.7%로 나타났다.

국제적 통계 분류 기준과 어긋나게 자신을 중산층이 아닌 하위층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증가했다. 부동산과 자녀 교육 등에서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면 그럴 수밖에 없다. 계층 간 소득 격차가 커진 것도 사실이다. “현실은 피라미드”라고 믿는 사람이 많은 이유다.

88%대 12%는 상·중·하의 3개 층이 아닌 상·하 2개 층 구조의 피라미드를 만든다. 12%를 빼면 다 하위층이다. 정부도 ‘하위 88%’라고 표현한다. 그 구조에서는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믿어 온 시민 중 상당수가 하위층이 된다. 25만원의 지원금이 이를 각인시킨다. 실제로는 중산층의 삶을 영위하면서도 불평등한 경제구조의 피해자라는 인식을 갖게 할 가능성이 크다.

기득권층의 욕심 때문에, 그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 구조 때문에 대다수 시민이 곤궁한 삶을 산다고 주장하는 더불어민주당에 88%대 12%의 갈라치기는 훌륭한 전략이다. 반면에 이에 합의한 국민의힘 지도부의 선택은 패착이다. 전술적 실패일 뿐만 아니라 올바른 정치를 펼친다는 원칙에서도 벗어났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중류층이 두터워야 공동체가 굳건해진다고 했다. 상류층과 하류층은 계급적 이기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봤다. ‘하위 88%’ 프레임은 합리적 중도층이 설 자리를 좁힌다. 국민의힘은 방역 정책의 피해자들에 대한 선별적 배상을 끝까지 주장했어야 했다. 원칙을 저버렸고, 실리도 잃었다.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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