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엎질러진 말·말·말

“그 사람 고려장 지내려 보냈대.” 누군가의 입에서 쏟아진 말이다. 순간 그곳 사람들 모두 화들짝 놀랐다. 실상은 오랫동안 병석에서 지내던 환자를 가족이 감당하지 못해 호스피스로 보낸 이야기였다. 지극 정성으로 돌보던 남편을 보내야 하는 부인의 쓰리고 아픈 마음을 누가 알랴. 한데 헤아림 없는 말이 그만 엎질러졌다.

때론 말이 참 무섭다. 여러 해 전 내가 큰병이 났을 때 믿음이 신실하다는 어느 권사님이 내게 “그봐, 믿음이 시원치 않아서 병 걸린 거야” 한다. 너무 황당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그분을 빤히 쳐다보고 말았다. 정말 그럴까. 그런데 믿음이 좋다는 그 권사님이 여러 질병으로 힘들게 투병 생활을 하다가 훌쩍 세상을 떠났다. 말이 남긴 뉘앙스가 깊은 상념을 불러온다.

병이 나서 꼬박 2년을 교회에 가지 못하다 용기를 내 교회에 간 날, 가깝다면 가까운 그녀가 웬일인지 병문안도 안 오더니 "왜 그래, 풍 맞았구나”하고 재미있다는 듯이 유쾌하게 말한다. 나는 속으로 많이 놀랐다. 그런 병도 아니지만 만약 그렇더라도 그게 어디 웃으며 할 말인가. 말의 홍수 속에서 진정한 위로가 아닌 마음의 상처가 된 경험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언젠가 ‘말 배우기 2년, 침묵 배우기 60년’이란 글을 발표한 일이 있다. 한데 말이란 참으로 쉽고도 어렵다. 칼보다 깊은 상처를 입히는 말, 치료제조차 없는데 어쩌자고 함부로 쏟아 놓는가 싶다. 사람이 가진 무기 중에 가장 강력한 무기가 세치의 혀라 한다. 싸고 싼 사향에서도 냄새가 나듯이 사람의 인격은 그의 말에 그대로 나타난다. ‘말 하기 전 채로 세번 거르라’는 말도 있다.

침묵, 그 또한 말하기 보다 더 어렵다. 그만큼 인격의 수련이 필요한 일이기에 하루도 말 안하고 살 수가 없다. 특히 부부 사이엔 더 많은 말을 하게 된다. 젊어서 그의 말에 넘어가 혼인하고 반백년을 살았는데 이젠 말이 화근이 되어 분란이 일어난다. 그이가 나를 때로는 말로써 흔든다. 일전에도 그의 엎질러진 말 한마디가 나를 화나게 했다. 50년 전 내가 그이의 속마음을 알았더라면 그와 결혼했을까. 속아 사는 것이 인생이라지. 처음으로 2주간 입을 봉했다. 그 또한 마음 편치 않은 어려운 일이었다.

이른 시간에 친구가 전화로 우리 동네에 불이 난 소식을 전해주었다. 바람 방향에 따라 우리집 반대편으로 검은 연기가 무섭게 이동하고 있었다. 결국 대비령이 내렸다. 나는 상황이 상황인지라 할 수 없이 봉했던 입을 열고 그이에게 "불이 났어요" 했다. 우리는 아들 집으로 피난을 가며 자연히 화해를 하게 됐다. 화재가 우리를 화해시킨 것인가. 그저 웃음만 나왔다.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다.’ 성경 말씀이다.

박유선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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