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날리던 혹독한 아버지, 내 인생 단련시킨 트레이너

[더,오래] 김명희의 내가 본 희망과 절망(26)
추운 날, 공터에서 어린 남자아이가 연을 날린다. 아이는 손에 얼레를 쥐고 높이 뜬 연을 이리저리 조정한다. 연은 고분고분 말을 들으며 오르락내리락한다. 그러더니 근처 나뭇가지에 연줄이 걸리고 말았다. 연줄을 풀려고 애쓰다가 마음처럼 되지 않자 아이가 얼레를 확 잡아당겼다. 순간 연줄은 맥없이 끊어지고 방패연은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잃은 채 땅으로 고꾸라졌다.

저 연처럼 그간 내 인생 모든 중심에는 언제나 ‘아버지’가 있었다. 30년을 병상에서 살다 하늘로 떠난 후 내 마음이 저랬다. 인생에서 적지 않은 날들을 아버지가 나를 줄로 묶어 사방으로 끌고 다녔다. 일찍이 학교 중퇴부터 공장을 거쳐 무수한 장소로 이동하는 내내 그 모든 목적은 아버지의 약값과 생활비를 버는 것이었다.




줄이 끊어진 연은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잃었다. 아버지가 30년을 병상에서 살다 하늘로 떠난 뒤 내 마음이 저랬다. [사진 pxhere]






그것은 달리 보면, 마음과 몸이 병든 아버지의 잔인한 폭력 속에서 내가 엄마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했다. 어쩌면 나는 엄마가 매 맞고 사는 모습이 괴로워 내 길을 못 가고 더욱 끌려다녔는지도 모른다. 그런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나는 줄 끊어진 연처럼 더는 목적지가 없었다.

무엇을 하든, 무엇을 먹든, 어디를 가든, 어디를 안 가든, 모든 것이 아버지에 의해서 돌아갔다. 아버지는 나와 엄마의 무선리모컨이었다. 내 인생과 엄마의 인생은 없었다. 아버지가 기분 좋으면 우리도 따라 웃고, 아버지가 기분 나쁘면 이유도 모른 채 밤새 맞거나 밥상이 방에서 날아다녔다. 엄마와 나는 하루하루가 아버지의 기분에 따라 움직이는 소모품 같은 존재였다.

그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니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방향을 잃고 말았다. 다른 사람 같으면 속으로라도 다 끝났다고 자신을 다독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줄이 끊어진 연처럼 땅으로 고꾸라진 상황이었다. 건전지가 방전된 로봇 같았다.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목적이 사라져 머릿속이 백지였다.

엄마가 객지로 가서 일하고 아버지 곁에는 다년간 내가 있었기에 우리 부녀간의 애증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한 달은 매일 먼 곳에 있는 아버지 산소에 가서 정신 나간 사람처럼 앉아있었다. 산소 옆에 누워서 하늘만 쳐다봤다. 남들이 보면 내가 효녀라서 그런 것으로 오해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는 건전지가 방전된 로봇 같았다.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목적이 사라져 머릿속이 백지였다. [사진 pixabay]






개를 말뚝에 오래 묶어두면 개도 모르게 그것에 길이 든다. 그래서 개는 멀리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포기하고 말뚝 주변 환경에 집착한다. 그 개를 움직이는 세상은 둥글게 그려진 원심 안쪽이 전부다. 그러다 오랜 후에 개의 목줄을 풀어주어도 개는 멀리 가지 못한다. 몸이 그동안 익힌 동심원 밖으로는 두려워서 나가지 못한다. 그것을 벗어나는데 긴 시간이 걸린다. 개는 목줄이 없어도 자신의 무의식 속에 감겨있는 목줄이 아직 남아있다. 그 때문에 말뚝 주변만 서성이며 묶였을 때와 똑같이 행동한다.

그때 내가 그랬다. 내가 본 아버지는 평생 가족을 향한 폭력 외에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드물었다. 가족의 수발이 항상 필요했던 분이다. 그런 아버지가 어느 날 혼자서 먼 길을 떠났다. 내가 묶였던 말뚝이 뽑혀나간 것이다. 나를 묶고 옥죄었던 말뚝과 노끈을 갑자기 상실한 나는 현실로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었다. 도대체 아버지 혼자 어디를 갈 수 있단 말인가.

49제를 지내고 돌아온 어느 날은, 아버지를 따라 저승에 가서 병수발을 들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런 내 모습이 보이자 ‘사람이 이러다 자살하는 것이구나’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때부터 정신을 바로 잡고 고졸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40대에 주경야독하며 대학교를 졸업했고 문학인이 되었다. 그러다 돌아보니 내 인생이 다 글감이었고 작품이 될 씨앗들이었다. 금광에 서 있는 것이었다. 필요에 따라 보석을 캐서 디자인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아프셨던 아버지와 가난했던 내 환경 덕분에 일찍부터 다양한 직업을 거쳤고 인생을 가까이서 볼 기회가 있었다.




살면서 우리가 겪는 불행은 반드시 괴롭고 힘든 악몽만 남겨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돌아보면 아버지는 나를 혹독하게 훈련 시키려고 내 인생에서 악역을 맡다 가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진 pexels]






과거 그토록 힘들게 했던 아버지가 내게 유산으로 남겨주신 것이 매우 많다는 것을 깨닫고 감사했다. 그 발견은 무척 놀랍고 뜻밖의 것이었다. 그 당시는 나를 끌고 다니던 불행과 아버지와 가난이 죽을 만큼 괴롭고 힘들었는데 그 덕분에 단단하게 무르익은 내가 보였다. 누구나 생각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살면서 우리가 겪는 불행은 반드시 괴롭고 힘든 악몽만 남겨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돌아보면 아버지는 나를 혹독하게 훈련 시키려고 내 인생에서 악역을 맡다 가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 덕분에 내가 더 다양한 생각을 하고 세상을 보는 눈을 터득했는지도 모른다. 올 초에 내가 쓴 메디컬장편소설 『헬로! 나이팅게일』로 2019 도전한국인상을 수상했을 때 서울시청 대강당 청중들에게 나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을 가장 괴롭게 하는 이가 있다면, 그에게 감사하라. 훗날 그가 바로 당신의 가장 멋진 트레이너였음을 알게 된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 혹시 지금 뭔가로 힘들다면 부디 힘내시길 바란다. 그 문제로 분명 놀라운 성장을 하게 될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지금 당장은 비명이 나올 만큼 힘들 것도 잘 안다. 그 트레이너는 사람일 수도 있고 물건이나 환경일 수도 있고 당신 마음이 만든 문제일 수도 있다. 그 문제와 정면으로 맞서고 해결하고 감내하는 동안 당신은 놀랍게 단단해지고, 한층 더 성장할 것이다.

시인·소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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