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길을 물으니 네 멋대로 가라 하더라

유라시아 오토바이 횡단 3개월
에드워드 박 인생 횡단 이야기

1만 5000마일의 유라시아 오토바이 횡단을 마친 에드워드 박씨가 또 다른 세계를 찾아 나섰다 다음번에 유럽 남부에서 아프리카 북부 지역 사람과 자연을 만날 계획이다. 오른쪽 사진은 그의 페이스 북에 담긴 여행 사진들. 김상진 기자
몽골의 드넓은 초원 풍경은 어떤 카메라라도 그 풍광을 잡아낼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블라디보스톡 성당을 배경으로 나의 애마 '수퍼맨'
여행은 쓰러지고 엎어지고 일어서는 과정이다.
1만 5000마일을 내달렸다. 지구상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의 가장 먼 육지 길이다. 아시아와 유럽이 연결되는 이른바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오토바이로 바람을 가른 에드워드 박(49)씨. 그는 지난 7월 7일부터 10월 3일까지 3개월가량을 달렸다. 박씨는 눌러앉으려는 토착민을 거부한다. ‘튀어나가고’ 싶은 기운이 항상 “부릉” 댄다. 그의 삶의 여정에 탑승했다.

1만 5000마일 20개국 돌아
가장 장거리ㆍ고난도 여행 길

여행, 돈 아닌 용기의 문제
‘장애물’은 철학적 사유 대상

역마살ㆍ유목인 이 시대 언어
점 하나 찍으면 ‘불가능 없다’



# 출발= 시작은 대한민국이었다. 어릴 적 10여 년 산 땅이지만 워밍업은 우리나라에서 하고 싶었다. 먼저 한바퀴 돌았다. "여행은 크게 생각하면 별거 없죠. '어느 나라 갔다왔다' 식은 참 여행이 아니죠. 여행은 잔재미예요." 곳곳의 아름다운 장면과 맛깔 나는 음식으로 심신을 채웠다. 10일간 한반도의 가장 크고 긴 산줄기인 백두대간을 넘나들며 정기를 빨아들였다. 그런 후 강원도 동해 항구에서 오토바이를 싣고 러시아로 출발했다. 동해 바다를 건너며 북한 땅을 생각했다. '유라시아 횡단은 완성할 수 없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 조그만 북한 땅이 유라시아 대륙의 잃어버린 퍼즐이 될 테니. 낯선 단어의 선착장이 보였다. 블라디보스톡.

# 두 바퀴 족= 초등학교 시절 부모가 사준 자전거는 '두 바퀴' 족을 일찌감치 잉태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이민 3학년 때 300달러를 모아 작은 스쿠터 오토바이를 샀다. 오토바이는 집에서 먼 거리에 세워놓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오토바이는 부모의 적이었다. 한때라며 어머니.아버지는 다행히 오토바이를 인정해 주셨다. 영원히 내 친구가 될 줄은 모르셨다.

# 짐 꾸리기= 여행의 동반자는 짐이다. 때론 구세주이기도 하다. 하지만 짐은 역시 '짐'. 단출하게 꾸리는 것은 상상력과 경험 간의 격한 대화다. 충돌하고 답은 어렵다. 솔직히 다 필요한 것 같다. 그래도 잉여는 꼭 나온다. "저걸 왜 들고 왔지 아참…." 이런 말 꼭 하게 된다. 여행을 떠날 때마다 인생의 짐도 그러려니 생각했다.

# 알래스카 예행 연습= 흔히 말하는 여행의 횡단과 종단에도 급은 있다. 먼저 가장 낮은 단계가 북미 횡단이다. 이것만 해도 많은 사람은 "와우" 한다. 다음 높은 단계는 알래스카 남미 종단 유라시아 횡단 순이다. 예행 연습차원에서 캘리포니아에서 오리건 워싱턴 주를 넘고 캐나다를 거쳐 알래스카로 들어갔다. 2015년 7월 19일간 9500마일을 달렸다. 밤 11시에 주유소에서 개스를 넣고 프리웨이를 달리는 데 동화 같은 일도 겪었다. "그 시간에도 백야로 인해 훤하더라고요. 정말 아무것도 없는 을씨년스러운 프리웨이에 살얼음이 꼈어요. 조심조심 달리는데 동물들이 길 양 옆으로 잔뜩 몰려나와 나를 쳐다보고 있는 거에요. 마치 '잰 뭐야? 처음 보는 앤데. 여기 이 시간에 어디를 가나' 하는 대화를 하는 것 같더라고요." 무섭고도 환상적인 장면을 뚫고 나아갔다.

# 러시아= 유라시아 횡단의 가장 큰 면적은 러시아 땅이다. 블라디보스톡 도착 후 현지 오토바이 클럽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두 바퀴' 족은 언제봐도 반갑게 대해준다. 스스럼없다. 두 바퀴에 몸을 의지해 아무런 보호막 없이 달려서인지 그 애틋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여행 스케줄을 이야기하면 '어딘 어떻다 거기 정말 좋다' 등 이야기가 쏟아진다. 가슴을 녹이는 보드카 못지 않게 대화는 뜨겁다. 참 내 애마의 명칭은 '수퍼맨'이다. 엔진 부위를 파랗게 색칠해서 마치 수퍼맨의 복장 같다.

# 가장 아름다웠던 곳= 이번 여행에서 20개국을 돌았다. 러시아 몽골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와 익히 알려진 유럽 나라들 또 스칸디나비아 3개국 등. 다 개성 있는 곳이었지만 내겐 몽골의 장면이 뚜렷하게 남는다. 그 넓고 넓은 초원 한 무리 양떼 말 탄 사내…. 흔히 TV에서 보던 장면이었지만 실제로 보니 완전히 달랐다. 그 색깔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 향기를 어떻게 말로 할 수 있을까. 그 우유와 치즈의 맛은 또 어떤가.

# 여행의 재미 '난감'= 러시아에서 몽골로 들어섰을 때다. 비가 쏟아지고 비포장 도로는 난장판이 됐다. 어라 오토바이가 미끄러져 엎어졌다. 혼자서 오토바이를 일으켜 세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넓은 초원에 움직이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어쩌랴. 쏟아지는 비를 두세 시간 맞으며 멍하니 서 있었다. 한 사내가 저 멀리 보였다. 손짓 발짓 도움을 구했다. '수퍼맨'은 그렇게 일어섰다. 사내는 자신의 집으로 안내했다. 내가 몽골인과 흡사하게 생겨서인지 친근감을 느꼈나보다. 따뜻한 우유(정말 생우유)를 먼저 내밀었다. 온몸이 녹아내렸다. 밥에 양고기와 야채를 먹고 포만감에 밖으로 나갔다. 비는 그치고 엄청난 별 무리가 쏟아지고 있었다.

# "X 됐다!"= 여행 중 난감한 일을 만나면 내가 하는 툭 뱉는 속된 말이다. 역시 날씨가 큰 문제다. 몽골에서도 그랬지만 러시아 프리웨이를 달릴 때 거센 바람이 불어 나무까지 휭휭 날아들었다. 토네이도 안에 있는 기분. 여행자 사고는 동네에 들어서면 제일 자주 발생한다고 한다. 길에서 초원에서는 별 사고 없다. 천둥번개가 칠 때면 프리웨이 근처 주유소로 갔다. 어떤 곳에서는 할아버지 주인이 뭐라고 하시는데 전혀 못 알아들었다. 대충 추측건대 '비가 요란하면 금방 그친다. 조용히 내리는 비는 끝까지 좇아온다'. 여행은 수많은 'X된 상황'을 만난다. 거기엔 철학이 있다.

# 도대체 직업이= 세계 여행 다니면 '살만한가 보지?' 한다. 현재 직업은 부동산 에이전트다. 주로 콘도와 로프트를 다룬다. 대학은 UNLV 호텔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사람 좋아하고 관계 맺는 것을 즐기고 나름 친절한 성격이 적성에 맞았다. 그런데 호텔에 있다 보니 음식요리에 관심이 생겼다. 스시를 배웠고 유명 체인점에서 취업 약속도 받았다. 그러던 중에 중국음식 패스트푸드점 P체인이 눈에 들어왔다. 오렌지치킨 하나로 미국을 석권한 곳이었다. 진로를 변경 입사했다. 엄격하고 철저한 관리를 받으며 비즈니스의 꿈을 꾸었다. 이후 저렴한 가격의 한식 패스트푸드 R식당을 컨설팅 창업하기도 했다. 망해서 웨이터로 스시맨으로 일하기도 했다. 한때는 식당장비업을 하기도 했다.

# 역마살= 여행을 좋아하다 보니 역마살이 끼였다고들 한다. 농촌 붙박이 시대에는 떠도는 삶이 힘들게 보였을 거다. 오죽하면 죽는다는 말(살)이 있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디지털 기기를 들고다니며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사람. 제한된 가치와 삶의 방식에 매달리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바꾸어 가는 사람이 그들이다.

# 디지털 유목민= 생긴 것도 몽골인과 비슷하지만 나는 유목민 기질이 다분한 것 같다. 거기에 요즘 디지털 기기에 강하다. 페이스북 유튜브 카카오톡 스토리 다 한다. 그걸 통해 '어떻게 재미나게 사느냐'를 보여주고 싶다. '어떻게 돈을 버느냐'가 아니다. 사람마다 갖고 있는 꿈을 연결시켜 주자는 게 내 디지털 가치관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디지털 유목민이다.

# 여행 중 가장 힘든 일= 국경 통과하는 것이다. 사실 한국은 국경을 접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유럽 쪽은 사방이 국경이다. 국경 앞에서 보통 2~3시간 무려 6시간을 기다린 적도 있다. 비자를 받기 위해 왔던 길을 되돌아 가서 다시 오기도 했다. 자연의 모든 것은 장애물이 아니었다. 인간의 제도 인간이 만든 무언가가 가장 힘들었다. 여행 중 가끔 존 레논의 'Imagine'을 흥얼거렸다. "Imagine there's no heaven. It's easy if you try. No hell below us Above us only sky…Imagine there's no countries. It isn't hard to do. Nothing to kill or die for And no religion too"

# 된장찌개와 뷔페= 어디를 가든 한식당을 찾아 된장찌개를 먹는다. 동유럽 에스토니아에서 '아리랑'이란 식당을 찾아가기도 했다. 그런 곳에 가면 음식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정을 듬뿍 먹고 힘을 얻었다. 굳이 한식당이 없으면 좋은 호텔에 가서 뷔페를 먹곤 했다. 대부분 그 나라의 주요 음식들이 잔뜩 있다. 세상을 돌아보니 '여행과 요리'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접착제였다.

# 짐 중에 책= 돈키호테. 두툼한 책이지만 들고다녔다. 이런 말이 나온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이 구절을 읽으면 묘하게도 힘이 솟는다.

# Let's get dirty= 여행 슬로건이다. 흙먼지를 묻히자는 말이다. 깔끔하면 되레 일이 더 커지고 복잡해 지는 경우가 많다. 젖을 때 젖고 더러울 때 더럽고 뒹굴어야할 때 뒹굴러야 한다.

# '점' 하나= 많은 사람이 '경제적 안정과 시간이 많으면 나도 할 텐데' 라고들 하신다. 내 생각엔 그렇지 않다. 도전적 여행은 '바로 지금'이다. 여행은 조건 명제가 아니다. 때론 무모한 것이 추진력이다. 인간의 상상력은 두 가지로 작용한다. 누구에겐 공포 또 다른 누구에겐 추진력이다. 불가능한 것을 손에 얻으려면 불가능한 것을 해야 한다. Impossible에 점 하나 찍으면 I'm possible이 된다.

# 여행 후기= 세계 각국을 돌아보니 살아있는 인간은 '에너지'와 'sharing(공유.분배)'을 갖춰야 했다. 에너지야 자기 열정이면 되겠지만 sharing은 배려와 성찰이 필요하다. 받아보면 주고 받아봐야 줄 수 있다. 일단 "밖으로 나가라!" 부딪히고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면서 나와 이웃을 제대로 알게 된다. 직업의 한계는 먹고 사는 것일 뿐이다. 나가도 대충 먹고는 산다. 하지만 거기에는 소중한 삶의 의미가 부록으로 끼여있다. 그 맛에 떠난다.

▶모험여행에 관심 있는 분 연락처:(213) 308-4989 에드워드 박

사회부 김석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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