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공감] 박사가 전자 제품도 못 고치는 이유

대학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방문한 친척집에서 생겼던 일이다. 친척 어른이 먼지가 뽀얗게 앉은 고장이 난 비디오 테이프 플레이어를 꺼내 나에게 그것을 고쳐달라고 부탁하셨다.

웃으며 할 줄 모른다고 말씀드리자 소위 명문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다면서 동네 전파상에서도 고칠 수 있는 가전기기 하나 고칠 줄 모른다고 나를 꾸짖으셨다. 처음에 농담인 줄 알았던 나는 머쓱해 졌고, 친척 형들이 나서 변명을 해주고 나서야 일단락이 되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전자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난 여전히 전자제품을 고치지 못한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비슷한 경험을 종종 한다. 주로 컴퓨터나 전화기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봐달라는 부탁인데, 고치기는커녕 문제조차 찾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귀찮아서 핑계를 대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내가 가진 박사는 '넓을 박(博)' 이 아니라 '엷을 박(薄)' 이라고 자조 섞인 변명을 하지만, 이해되지 않는다는 사람들의 표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실제로 박사학위는 만물 박사와는 거리가 먼, 아주 좁은 분야에 있는 문제점을 조금 깊게 고민하여 해결방안을 모색해 봤다는 경험에 대한 증서에 지나지 않는데 말이다.

혹시 우리는 교회의 목사라는 직분에 대해 이와 비슷한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수 있도록 훈련받았기에 일반인 보다는 성경과 교리에 대한 지식이 풍부할지 모르지만, 그들도 직분만 다를 뿐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배우고 자라가야 할 성도의 일원이다. 그들은 성도들이 믿고 따라야하는 대상이기 이전에,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지 감시하고 견제해야하는 대상이다.

슬프게도 많은 목사가 강단과 길거리에서 자신들의 편협한 정치적 입장을 하나님의 뜻으로 포장하는 것이 만연한 시기가 되었다. 정말 자신들을 만물 박사로 생각하는 것일까. 자신의 생각과 하나님의 뜻을 구별해 전하지도 못하는 자들이 떠들어대는 소음을 들을 때 마다,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전자공학생이 값비싼 전자제품을 고치겠다고 설치며 기기를 앞에 두고 분해하려는 모습이 떠올라 우습기도 하고 무엇보다 부끄럽다.

차라리 그들이 고장난 전화기에 손을 얹고 고쳐달라며 통성으로 기도하는 것을 보는 게 덜 부끄러울 듯 싶다.

www.fb.com/theegital

김사무엘 / 박사·데이터과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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