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사람들 47] “공항서 주 2회 자원봉사 해요”


전 한인간호사협 회장 박성덕씨

“제가 죽었다는 소문이 돈다는 거예요. 이렇게 멀쩡히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데…” 간호협회장을 지냈고 한인회 부회장, 평통위원 등으로 활동했던 박성덕(67•사진)씨가 중앙일보를 찾아 왔다. 이제 막 오헤어 공항에서 자원봉사(에어포트 앰배서더) 일을 마치고 오는 중이라고 했다.

그는 신문에 얼굴이 나야 살아 있다는 걸 알게 아니냐고 말하는데 그런 소문이 난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2013년 갑상선 암 진단을 받고 무려 8차례에 걸쳐 수술을 받았다. 간호사 40년의 경력도 그때 접었다.

공항 자원봉사는 매주 2차례 한다. 사람들이 국제선 하면 무조건 5번 터미널로 가는 실수를 범한다면서 “구글에 비행기 번호만 넣으면 터미널과 게이트가 나온다”고 강조했다. 또 한인들 중 공항 TSA 요원 지원자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항에서의 봉사는 극히 일부분이다. 레익뷰 장로교회 실버대학 강의와 해마다 한국을 방문해 모교인 경북대와 부산대 등에서 후배들에게 특강도 한다.

‘살아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 라는 말은 핑계이고 그는 자신이 경험해 온 삶의 교훈을 시카고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했다. “간호사로 마지막 근무한 곳이 재향군인 병원이었어요. 18년간 근무했는데 연방공무원 연금이 나와요. 또 그 경력으로 타주에서도 간호사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박씨는 또 재향군인 병원서 만난 한국전 참전 용사들이 동족간의 전쟁이라는 이유로 ‘코리안 워’가 아니라 ‘코리안 갈등’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가 많았다고 전했다. 그는 할 말을 쪽지에 적어왔다. 자신의 인생에서 아쉬웠던 점으로 간호장교를 하지 않은 것을 꼽았다. 한국정부에도 서독 파견 간호사들만 챙기지 말고 1970년대부터 미국에 와서 이민사회와 한국경제에 도움을 준 이곳 간호사들의 노고도 알아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박성덕씨는 1974년 간호사 고용계약을 맺고 조지아로 왔다. 1977년 시카고로 옮겨 40년을 넘게 살았다. 어머니와 7남매가 모두 시카고에 산다. 슬하에 1남1녀를 두었다. 두살배기 손자가 너무 예쁘다고 자랑이다.

도태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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