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산책] 소양강 처녀, 매릴린 먼로

한국 소양강가에 뜬금없이 매릴린 먼로의 동상이 세워졌다는 뉴스를 보고 한동안 멍했다. 아니 이 분이 언제 소양강 처녀가 되셨지? 사진을 보니, 뉴욕의 지하철 통풍구 위에서 치마를 펄럭이던 금발미녀, 풍만한 몸매와 뇌쇄적인 입술, 게슴츠레 반쯤 감은 눈…. 영화 '7년 만의 외출'에 나왔던 바로 그 모습이다. 아니 도대체 이런 모습이 소양강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지?

자료를 찾아보니, 구성진 유행가로 우리와 친숙한 '소양강 처녀'의 동상은 이미 세워져 있다. 그런데 무슨 까닭으로 또 매릴린 먼로를 모셔왔지? 한국과 미국의 조화를 맞추자는 것인가? 아니면 누가 더 예쁜가 비교해보자는 걸까?

이 동상은 인제 지구 하천환경정비사업의 하나로 인제군 인제읍 소양강변에 세워졌다는데, 당국이 보도자료를 통해 밝힌 건립 이유가 참으로 기발하여, 어처구니가 없다. "관광객 유입 활성화를 위해, 1954년 미군 부대 위문 공연을 왔던 매릴린 먼로의 인제 방문을 스토리텔링 해 먼로 동상을 세웠다."

매릴린 먼로 때문에 관광객 유입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발상이 참 순진하고, 미군 장병 위문 공연을 왔었으니 이 지역과 관계가 있다는 설명이 엉뚱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이 동상의 제작과 설치에는 약 5500만 원이 들었다고 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논란이 쉽게 갈아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동상이나 조형물, 벽화 등을 환경미술 또는 공공(公共)미술이라고 부른다. 공공미술은 한 나라나 지역의 특성과 문화적 배경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존재다. 말하자면, 그 지역의 개성적 표정인 셈이다. 서울 광화문 광장의 표정과 분위기를 이루는 것이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동상인 것처럼. '소녀상'처럼 역사의 아픔을 대변하기도 하고, '자유의 여신상'처럼 랜드마크 역할도 한다. 그래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하지만,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공공미술은 소양강변의 매릴린 먼로처럼 보는 사람을 당황스럽게 만드는 공해다. 공공미술은 그 시대, 그 지역의 가치관과 잘 어울려야 한다.

그것은 그렇고, LA코리아타운 공공미술의 현실은 어떠한가. 코리아타운을 상징할 만한 조형물이나 동상이 있는가. '다울정'이 있기는 하지만 여러모로 만족스럽지 못하다. 뚜렷한 랜드마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 이웃인 차이나타운이나 리틀도쿄에도 대단한 상징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나름의 독특한 분위기나 냄새가 있다. 그에 비해 코리아타운은 이렇다 할 특징 없이 넓게 퍼져 있는 데다가, 어수선하기만 하다는 인상이다. 낙서는 왜 그리 지저분하게 많고, 간판들은 왜 그리 무질서한지. 타 인종들이 한국 특유의 문화적 향기를 즐기러 올 만한 환경이 전혀 아니다.

이런 환경에 중심을 잡아주고, 우리의 정신문화와 가치관을 잘 보여주는 조형물이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예를 들자면, 미주 한인사회의 정신적 스승인 도산 선생의 동상을 세운다든지, 한국적 아름다움을 담은 건물을 세워 랜드마크로 삼는다든지. 생각해보면 방법은 많을 것이다.

그런 바탕이 만들어져야 다양한 인종들이 찾아오고, 우리가 꿈꾸는 문화나 음식의 한류도 싱싱한 활기를 얻을 것이 아닌가.

장소현 / 극작가·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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